운남 무왕부는 운남의 주변 세력에 의해 분과되어 결국 멸망으로 치닫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충진제년, 정치부패, 관원 부정부패, 당시 무왕부의 가족인 무천파도 동참했고, 결국 운남의 여러 곳에서 토스트가 반란을 일으켜 결국 무천파가 운남에서 쫓겨났고, 그가 운남으로 돌아갈 때까지 기다렸다
명나라가 삭판할 때 무왕부를 제거하지 않은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무왕부가 30 만 명의 병력을 담당하고 있지만 운남의 정무는 여전히 제왕의 손에 달려 있어 무왕부가 풍광처럼 보이지만 실권은 비교적 적다. 또 다른 이유는 윈난이 남서부 지역을 처리하고 남서부의 여러 나라와 접해 있고, 명나라는 무왕부를 필요로 하며, 무왕부가 제거되면 명나라 남서부의 국경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명나라가 멸망하기 전후로 무왕부의 마지막 주인 목욕파도 많은 경험을 했지만, 시종일관 그는 명나라에 충성했다. 운남의 많은 토스트 반란이라는 국면은 명나라가 곧 멸망할 때부터 남명의 멸망을 이어갔다. 명나라가 멸망한 지 1 년 후, 원래 무천파는 사정주의 도움으로 무정 토스트 우필규 반란을 평정하였지만 늑대를 방으로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정주는 운남의 군사포방력을 알게 된 뒤 변변을 일으켜 무천파를 운남에서 몰아냈다. 3 년 후 무천파는 손망의 지지를 받아 윈난을 죽이고 사정주를 섬멸했지만, 당시 운남 무왕부는 이미 손망의 손에 넘어갔다.
이후 남명의 제왕 영력제는 만청대군에 쫓기고 운남에 진입했다. 당시 운남의 토황제 손망은 영력제에게 복종하는 척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이 영력제에게 납치됐지만, 손전망의 대장군 이정국은 영력제에게 손망을 물리치도록 도왔고, 손대는 청군으로 도피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후 영력제는 천무보의 도움으로 미얀마로 도피했다